정확한 결과는 내일 아침이 돼 봐야 알겠지만, 이번 선거 결과가 참 재밌게 나올 것 같다. 선거 전의 절망적인 분위기에 비하면 지금 결과는 일단 대성공에 가까운 것 같으니까. 그보다도 앞으로 정치판이 정말 재밌고 다이나믹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 실패가 유력해 보이지만, 단순히 여소야대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국민의당의 정체성(?) 때문에. 그동안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양쪽 모두를 까면서 대안정당, 중도 내지는 중도보수 포지션을 잡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창당 당시의 구성원이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탈당파였다 보니 오른쪽으로 얼마나 확장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근데 이번 선거에서 결과를 볼 때 국민의당이 내 예상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의 표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표를 상당히 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 실패, 그리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예상외의 선전으로 앞으로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어쩌면 정의당까지)의 의석을 합치면 과반이 되겠지만, 반대로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의 의석을 합쳐도 과반이 된다. 국민의당의 성향이 대충 양당의 사이 어디쯤에 있고, 또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캐스팅보트로서의 입지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테니 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은 사안에 따라서 때로는 더불어민주당과, 또 때로는 새누리당과 공조하며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후보단일화 얘기가 오고갔지만(물론 제대로 된 데는 거의 없지만), 다음 선거에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단일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심지어 지역구별로 다른 형태의 단일화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더민주 vs 새누리(+국민), 더민주(+국민) vs 새누리, 국민(+더민주) vs 새누리, 더민주 vs 국민(+새누리). 이런 식으로.

 

문제는 각 당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인데. 일단 새누리당보다 걱정되는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다. 새누리당이야 뭐 그동안 보여준 단합력(?)이 있는데다가, 이번 선거결과는 그들에게 위기일 테니 다른 데 신경쓸 여력이 없을 거다. 아마 대선때까지는 납작 엎드려서 절치부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지(실제로 변했는지와는 별개로...). 문제는 대성공을 거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인데, 선거에서 이겼(?)다고 신나서 배당 나누는거랑 앞으로 당내 지분 나눠먹는 걸로 싸우는 모습 보이면 대선 대차게 말아먹고 아마 다음 총선은 국민과더불어민주당(?) 간판 달고 치루게 될 거다. 국민의당 지지 세력에는 기존 정치혐오층의 지분이 상당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 지지세력인 호남을 잃어버린 만큼, 두 당 모두 내부 세력다툼에 골몰한 모습을 보이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 걸로 보인다.

 

그리고 국민의당에는 한 가지 위험요소가 더 있지 싶은데, 거대양당의 중간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거다. 이번 선거로 몸집을 많이 키우긴 했지만, 어쨌든 1,2당과 체급차이가 좀 나는 3당이고 보면, 사표론에 좀 더 피해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거다. 특히 저번 대선에 새누리당이 엄청난 좌클릭 공약들을 쏟아낸 것처럼(실제론... 뭐...), 다음 대선에도 중도를 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우클릭, 새누리당은 좌클릭을 해 올텐데, 국민의당은 어떻게 차별화를 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국민의당이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건 아마도 더불어민주당의 우클릭이나 새누리당의 좌클릭보다 훨씬 어려울 거다. 그래서 국민의당이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압도할 만큼 중량감있는 후보를 내놓지 못하면 '전략적 선택'으로 지지자들을 양쪽으로 야금야금 빼앗기다가 결국 둘 중 하나의 연대 파트너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국민의당에 그만큼 중량감있는 예비 대선주자가 있느냐인데...

 

그래서 개인적으론,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연대해서 선거제도를 좀 손봤으면 한다. 다당 체제가 꼭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선거제도는 양당체제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면이 있는 만큼, 현재 2,3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저번에 기껏 선거구 바꾼다고 해서 어떻게 하나 봤더니 비례나 줄이고 있고-_-; 누구는 국회의원 숫자 줄이자는 얘기나 하고-_-;; )

 

그간의 수많은 사례들ㅡ국민승리21,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등ㅡ을 봤을 때,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일단 다음 국회, 다음 대선은 꽤 흥미진진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썩 반갑지만은 않지만 국민의당의 존재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이 모두 중도화되는 효과도 있을 것 같고, 내년 대선에서 어느 당 후보가 당선되든 국민의당을 포함한 연정이 구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국민의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려고 하지 않을까...

 

 

 

 

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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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났지만, 얼마 전에 노벨상 시즌이었다.

 

왜 우리나라에선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안 나올까. 사실 해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올해는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바람에, 왜 우리는 안 되냐는 얘기가 더 크게 나왔던 것 같다.

 

흔한 말들이 있다. 기초연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돈되는 연구에만 매달려서 안 된다거나, 연구를 시켰으면 진득하게 믿고 기다려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성과를 닥달하기 때문에 다들 단기적인 성과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된 연구를 못 한다던가,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처럼 돈되는 연구에만 매달리지도 않고 일단 밀어주기로 한 건 진득하게 밀어준다던가 하는 얘기들. 기초연구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어떻고 다른나라는 어떻고 하는 얘기를 하기엔 나도 우물안 개구리라 잘 모른다.

 

다만 궁금한 건, 노벨상을 꼭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하느냐. 그리고 둘째, 그럼 최근에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노벨상 후보 몇 명 찍어서 팍팍 밀어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둘다 글쎄요. 부정적인 의미의 글쎄요다. 노벨상은 대부분 수상 시점에서 10년 이상 지난 연구에 주어진다. 어떤 규칙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처음엔 생각도 못 했는데 그 연구가 가지를 치고 발전해나가는 걸 보다 보니 이렇게 중요하고 쓸모있는 거였구나!' 라는 걸 모두가 깨닫게 되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다[각주:1]. 즉, 미래에 노벨상을 받게 될 연구를 현재 알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다. 아니 그걸 안다는 건 이미 누군가가 그걸 연구해서 발표하기 직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ㄲㄲ 결국 노벨상을 받으려면... 아니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내려면 이게 노벨상감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이 연구가 장차 쓸모있게 될지 아니면 돈버는 것과는 영 관계없는 연구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장기간의 투자를 해야 된다는 거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겠다고 투자를 하는 건 어찌 보면 도박이다. 아니 노벨상이 목표가 아니더라도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한다는 건 도박일 수 있다. 수많은 연구 중에 돈이 되는 연구로 발전해서 투자금을 뽑아낼 수 있게 되는 연구는 그 중에 극히 일부일 뿐이니까. 나머지는 좋게 말해서 인류의 지식을 확장시키는 연구가 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논문을 위한 연구, 연구자의 자리보전을 위한 연구가 되는 거다. 어디서 본 표현에 따르면 기초연구는 사치품, 선진국으로서 전 인류의 지식 확장을 위해 구매하는 사치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건 그냥 로또를 긁는 거다. 뭐... 사치품이든 로또든, 매년 소득의 일부를 그런 데다 투자하는 게 필요할까??

 

아, 물론 나는 기초연구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니까, 이쪽에 돈을 많이 투자해준다면 당연히 환영이다. 근데, 맨날 쪼들리는 연구자 입장에서, 돈을 달라고 정부와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어떤 논리를 써야 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선진국으로서 인류에 대한 의무다? 아님 로또 긁는다 생각하고 투자해 달라?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처음에 이걸 시작할 때는 '순수한 학문의 세계를 탐구하는 거야! 멋지지 않아?' 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늙었나 보다.

 

자, 그래서... 사치품이든 로또든 일단 돈을 투자한다고 치자. 개인적으로 로또 비유가 맘에 드니까 로또라고 하면,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최대한  다양한 번호를 사야 된다. 물론 당첨됐을 때 상금을 혼자 다 먹겠다는 생각으로 한 번호에 몰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거 분명 설득력있긴 한데 노벨상이랑은 다른 경우다. 성과가 훌륭하다고 한번에 노벨상 두개 세개씩 받는 거 아니잖아. 한 사람이 같은 주제로 여러 번 상을 받는 경우도 없고. 그러니까, 굳이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싶다면 적은 돈이라도 (너무 적으면 안되겠지만) 여러 연구에 나눠서 투자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인데, 예전부터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자꾸 몇 명한테 몰빵을 하려는 것 같아 걱정이다.

 

 

  1. 아,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논문 내고 몇 년 안 돼서 노벨상 받는 사람들도 있고, 연구자들끼리 '이거 풀면 노벨상인데ㄲㄲㄲ' 하고 농담하는 주제들도 있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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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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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일상*생활*잡담 2015. 7. 27. 22:07

마지막 글을 쓴지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네.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 보니 내 말투(글투? ) 가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내 글을 읽는데 낯설어...

그리고 충격.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이 글을 썼다는 것도 가물가물해질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 글을 다시 보니 영 못 알아먹겠어. 다시 글을 쓰게 되면 좀더 신경써야지.

다시 블로그를 조금씩 해볼까 하는데, 이젠 예전만큼 컨텐츠도, 생각도, 열정도, 시간도 없는 것 같아. 다시 한다면 게임하는 얘기나 쓰게 되려나. 낄낄.

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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