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제원, '우남찬가'작가 민·형사 고소

 

난스럽다... 라는 게 개인적인 첫인상이었다. 업무방해, 명예훼손,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 했다는데, 음 일단 나는 법알못이라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걸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떠오르는 사건이 있는데,

 

<계를 넘어서: 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법 오래 전 일이고, 또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이랑 꽤 비슷하지 않나 싶다. 뭐 이쪽은 공모전이고 저쪽은 학술지에 논문 투고하는 거란 차이는 있지만, 학술지는 불특정 다수(학술지에 실릴 수준이 되는 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은 한정돼 있지만 논문 투고에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를 대상으로 논문을 '상시 공모'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작자들의 의도와 행동을 생각해 보면, '우남찬가'를 쓴 장모씨는 작품 안에 공모전의 취지에 반하는 내용을 숨겨서 제출해서 입선했고, 소칼 역시 논문에 학술지의 취지에 반하는 내용을 숨겨서 투고, 논문을 게재하는 데 성공했다. 차이점이라면 장모씨는 입선해서 주최측으로부터 상금을 받았고, 소칼은 아마도 게재료를 냈을 거라는 것 정도??

 

근하게 진행되고 있던 과학전쟁은 소칼의 장난으로 대폭발한 걸로 알고 있다. (철알못인데다가 어릴 때 일이라 아닐 수도 있다. '지적 사기'라는 책 제목이 대단해보여서 샀는데 뭔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건 함정) 다만 소칼에게 피해를 본(?) '소셜 텍스트' 측에서 소칼을 고소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좀 조사를 해 봤는데 법적 다툼은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있었다면 나의 영어실력에 큰 문제가...ㅜㅜ) 그런 일로 법정에서 다투는 게 아메리칸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학문적인 논쟁으로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속은 게 쪽팔려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국보훈의 달> 원주 시정홍보지 만평 대통령 욕설 사건

 

어보지 못했던 일인데, 이번 자유경제원 건과 유사한 사례로 많이 회자되고 있어서 알게 됐다. 이 사건에선 만화가가 벌금형을 받았는데... 법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우남찬가 사건과 이 사건의 가장 큰 차이는, 우남찬가는 공모전에 제출된 작품이고 이 만평은 용역계약을 통해 제작됐다는 점 아닐까 한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이 만화가는 원주시와 계약해서 회당 얼마씩 받고 시정홍보지에 만화를 그렸다는 것 같다. 원주시 쪽에서 만화를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하고 하나하나 지시하지는 않았겠지만, 시정홍보지인 만큼 내용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의 지침은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판결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물론 원주시가 '아 우리는 만화는 모르구요 그냥 그리고 싶은 거 그리세요' 라고 했다면 웃긴 일이지만.

 

갑하다. 이 사례에서 저 만화가는 300만원 벌금 받았는데, 자유경제원이 청구한 금액은 대략 5700 만원... 솔직히 우남찬가 지은이가 유죄를 받을 거라고 생각 안 하지만, 혹시나 유죄가 나오더라도 저건 오바 아닌가? 원주시 사건은 2009년이고 지금은 2016년이긴 하지만 물가가 20배 뛴 것도 아니고, 공모전에서 세로드립 친 게 시정홍보지 만평에 욕 넣은 것보다 20배 큰 잘못도 아니잖아.

 

 

, 그래서 결론은 뭐냐면,

 

일 큰 차이는, 원주시 건은 한 사람을 찍어서 우리가 원하는 걸 그려 달라고 계약을 한 거고, 자유경제원 건은 불특정 다수에게 너네가 자유롭게 시를 쓰면 그 중에서 우리가 맘에 드는 걸 고르겠다고 공모전을 열었다는 거다. 당연히 만화가는 원주시가 원하는 걸 최대한 맞춰 줘야 할 의무가 있지만(계약이니까), 이승만 시 공모전에 참여하는 사람이 자유경제원의 입맛에 맞춰 줄 필요는 없다. 주최자, 심사자 맘에 안 들면 그냥 탈락인데 뭘.

 

새 있었던 일로는 1번 사례와 비슷한 듯 많이 다르지만, 황우석 사건이나 오보카타 하루코 사건이 있겠다. (황이 2005~2006이었고 오보카타가 2014였나 그러니까 요새는 아니지만 소칼 사건이 1996이니까 요새로 치자. 세로드립도 해야 되니까... 맞추느라 힘들었다) 황우석이나 오보카타가 논문 조작한 것 때문에 감옥에 갔다거나 벌금을 냈다는 얘긴 못 들었다. (아, 연구비 횡령이나 연구윤리 위반 같은 건 논문조작과는 다른 문제다) 물론 그간의 연구성과가 부정당하고 학교에서도 짤렸지만, 그건 학계 내부의 일이고, 공권력이 개입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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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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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게 된 TED 영상이다. 2013년 10월 촬영했다는 걸 보니 3년쯤 돼 가는 영상인 것 같지만 아무튼...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게 '다른'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틀린' 거라고 해도 그렇다. (사실 그렇게 옳고 그른 게 딱딱 나눠지는 문제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토론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들을 때, 내 '의견'이 아닌 그 의견을 말한 나라는 '사람'이 공격받는다고 느끼는 건 쉬운 일이고,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의견을 반박하려 할 때 의견이 아닌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흔히 하기 쉬운 실수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하지만 인간이라고 항상 이성적인 건 아니고, 때로(어쩌면 매우 자주) 본능적이고 또 감정적인 게 인간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논리의 허점을 찾아서 반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너, 나, 우리 키보드워리어들이 자주 잊어버리는 것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이길 수가 없다화가 난다. 그래서 화려한 논리로 쳐발라버리면 내 기분은 아마도 좋을 거다. 근데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내 앞에선 안 그러겠지만 다른 데 가서는 예전과 똑같이, 혹은 더 심하게 굴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감정이 상했거든. 그런 꼴을 나중에 보게 되면 그때도 내 기분이 계속 좋을까?

 

그거야 그 사람이 못나서, 덜떨어져서 그런 거고 나는 맞는 얘기를 했고 그렇게 얘기해줘도 못알아먹는 그 사람이 문제인 거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나는 항상 옳을 수 있을까? 어디 가서 논쟁이 붙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내가 틀린 것 같다. 그래서 기분이 상해서, 적당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를 바보, 덜떨어진 놈, 교양없는 놈, 이상한 놈, 나쁜 놈을 만든다. 그럼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마음을 고쳐먹고 싶을까?

 

토론은 그냥 승패를 가리려고, 내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이겨먹을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작게는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크게는 우리가 속한 집단,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려고 하는 건데, 논리로 백번천번 제압해봤자 감정 상해서 삐딱하게 나오면 의미없는 거잖아.

 

빠가 까를 만든다. 그리고 까가 빠를 만든다... 랑도 통하는 말인 것 같다.

아주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누구누구 지지자들이 하는 꼴이 맘에 안들어서 누구누구가 싫어졌어요... 이런 걸 무시하면 안 되는 거다.

 

그냥,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여기저기의 분위기를 보다 문득 이 영상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주장들이 충돌하고 있고, 내가 보기에 옳아 보이는 주장도 있고 좀 아닌데 싶은 주장도 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각 진영의 감정이 점점 상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싶다. 상호확증파괴

 

이 사건을 분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과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은 물론, 당연히,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참혹한 사건 앞에서 매우 감정적이 된 개개인의 거친 반응들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양쪽 모두, 지금 당장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도 이상한 글을 보면 화가 나고 답글을 달기 위해 키보드를 잡으면 피가 끓어오른다. 감정적 올바름을 시도해 보자는 위 TED 영상의 샐리 콘 씨 자신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아, 잘못은 저쪽이 먼저 했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내 말이 맞고 쟤 말이 틀린데 왜 내가 그래야 하냐고 물으면 역시 할 말 없다. 그냥... 어느 쪽이든 먼저 이성을 찾는 쪽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내 논리가 옳다고 상대방 속을 박박 긁고 키보드로 막 두들겨 패는 것까지 옳은 건 아니잖아.

 

p.s. 사회 전체적으로 스트레스가 꽉 차 있는 것 같다. 다들 뭐 하나만 걸려라 하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요새 팍팍하다는 얘기겠지. 뜬금없지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와 '저녁이 있는 삶'이 생각난다. 여유가 있어야 아량도 나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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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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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돌들의 지식 부족이 화제가 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긴 하다. 오래 전 일이지만 lose 사건이라던가, 그리스 새벽 축구 사건 등등이 있었고, 최근 있었던 안중근 사건도 그렇고. 또 별로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모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멤버가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인수분해를 하고 있더라... 라고 하자 다른 멤버가 난 그쯤부터 수학 포기했다고 말하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웃기다기보단 뭔가 답답하고 슬픈 느낌이었다.

 

 

아이돌 얘기만 했지만, 운동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비슷한 상황일 거다. 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니면서 본 운동부 학생들의 모습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 않거나. '운동부 학생이 시험지에 답을 쓰는 건 처음 봤다'던 모 운동선수의 대학 교수의 회상이 기사로 나온 적도 있었다. 

 

그나마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뜨기라도 했지, 저보다 훨씬 많은 소년소녀들이 저런 무식이나마 방송에서 보여줄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몇 년간 연습만, 훈련만 하다가 나이 먹고 뒤늦게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 부딪힐 거다. (물론 많이 배우고 많이 안다고 막막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나마 요즘은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위에 적은 고등학교-대학교 때의 경험도 10년도 더 지난 일이고, 듣기론 연습생들도 성적이 어느 정도 이상 나오지 않으면 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아이돌도, 운동선수도, 성공하려면 10대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고, 공부하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고,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하고 활동하다 보면 수업에 빠지거나 수업을 제대로 따라올 수 없을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하는데... 근데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들도 우리랑 같이 이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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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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