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광우뻥 사건 이후로 한겨레는 음모론에 선동기사만 쓰는 것 같아서 잘 안 봤는데, 어느 날 네이버 메인에 뜬 기사 제목이 섹시해서 들어가 보니 이런 기사가. 한겨레를 약간은 다시 보게 됐다.
기사에서 말하는 대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때는 저렇게 자신있게 돌직구를 던져야 된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건 일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정말 억울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느냐 하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니까.
물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는 있다. 일단 흉악범을 죽여서 없애 버리는 게 오랫동안 가둬놓고 관리하는 것보다 당연히 훨씬 싸게 먹힌다. 그리고 과학적 근거 부족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 안 변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흉악범이 아니라 흉악범의 DNA를 미워해야 된다).
그래도 내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냥 그게 잔인하기 때문이다. 좀 없어 보이긴 해도, 우리는 결국 일단 감정으로 답을 정해 놓고 거기 맞는 근거를 찾아서 갖다 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개개인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사에 걸친 인간 집단 의식의 어떤 흐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그렇다면 사형제에 반대하는 게 새로운 흐름에 발맞추는 게 아닐까 :-P
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고, 권력자가 죽으면 아랫사람을 무덤에 같이 넣던 시대에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뭐만 하면 죽기는 해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죽음을 주던 시대에서,
형벌이 세분화되어서 죽음은 정말정말 큰 잘못을 해야 받는 그런 극한의 형벌인 시대에서,
이제는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것만큼은 안된다는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는 시대가 됐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었는데 역사공부를 깊이 하지 않았으니 맞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시대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가치관이 있잖아. 무엇이 그런 시대의 가치관을 만들고, 또 그 시대의 가치관을 변하게 만드는 걸까. 과학? 종교? 철학? 글쎄. 과학은 그게 변화를 유도하는 거라기보다는 새롭게 대두되는 가치관에 끌어다 맞춰져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로 주로 이용되어 온 게 아닌가 싶고, 종교 역시도 그렇고,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아이디어는 결국 철학자들의 머리속에서 나왔던 걸까?
여담인데, 살인사건에 대한 보도, 최소한 살인 방법에 대한 자세한 보도는 좀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도대체 범인이 어디를 어떻게 찌르고 자르고 도려냈는가 하는 것까지 일반 사람들이 자세히 알아야 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스트레스와 갈곳없는 분노를, 그리고 욕구는 있지만 창의력이 부족한 상태의 잠재적 범죄자들에겐 범행 수법에 대한 영감을 주는 효과밖에 없는 거 아닌가?
사실 누가 살해당했다는 거, 그리고 누구를 살해한 범인이 잡혔다는 거를 왜 굳이 뉴스에서 봐야 하는지도 난 의문이긴 하다. 백번 양보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서 좀더 조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뭐 건어물이나 클로로포름 손수건이나 짐 들어줘서 고맙다고 주는 약탄 드링크라던가 버스에서 시비거는 할머니와 따라오는 승합차라던가 그런 종류의 소문 혹은 괴담까지도 괜찮다 치자. 근데 뭐 어디를 어떻게 자르고 토막내고 인육이 어떻고 하는 건 결국 사회의 분노와 불안의 총량만 증가시키는 거 아닌지. 게다가 그 대상마저도 불명확해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조차 감이 잘 안 오는 그런 분노와 불안. 안그래도 생활이 팍팍한데 자꾸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주니까 무슨 일만 났다 하면 사람들이 사형시키자, 아니 편하게 죽이면 안되니까 때려죽이자 가죽을 벗기자 팔다리를 자르고 눈알을 뽑자 하는 거 아닌지. 그들을 볼 때면 억눌린 스트레스, 혹은 살인에 대한 욕구를 합법적으로(!) 풀 수 있는 창구를 찾는 건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공개처형이나 국민참여사형(!) 제도 같은 거 도입하면 하겠다는 사람 많을 듯.
고상한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덩달아 흥분해서 너네 가족이 당했어도 그럴거냐 하기 전에(아니 내 가족이라면 당연히 눈이 뒤집어지겠지), 많이 차가운 소리 같지만 일단 우리 모두가 한가족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과,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건 당사자들의 분노가 아니라 제삼자들의 이성이란 걸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복수가 아니라 공감과 위로고, 특히나 국가는 복수를 대신해주는 집단이 아니다.
그래서, 형벌의 목적이 복수가 아니라 교화라면(물론 교화되지 않겠지만), 그래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게 목적이라면, 피해자가 합의해 줬다고 가해자를 용서해주거나 형을 감해주는 요상한 제도는 없어져야 되지 않을까? 그는 피해자에게 피해를 줬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건데 말야. 오히려 가해자가 깊이 반성하고 있으므로 형을 감해준다는 핑계는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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