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게 된 TED 영상이다. 2013년 10월 촬영했다는 걸 보니 3년쯤 돼 가는 영상인 것 같지만 아무튼...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게 '다른'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틀린' 거라고 해도 그렇다. (사실 그렇게 옳고 그른 게 딱딱 나눠지는 문제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토론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들을 때, 내 '의견'이 아닌 그 의견을 말한 나라는 '사람'이 공격받는다고 느끼는 건 쉬운 일이고,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의견을 반박하려 할 때 의견이 아닌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흔히 하기 쉬운 실수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하지만 인간이라고 항상 이성적인 건 아니고, 때로(어쩌면 매우 자주) 본능적이고 또 감정적인 게 인간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논리의 허점을 찾아서 반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너, 나, 우리 키보드워리어들이 자주 잊어버리는 것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이길 수가 없다화가 난다. 그래서 화려한 논리로 쳐발라버리면 내 기분은 아마도 좋을 거다. 근데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내 앞에선 안 그러겠지만 다른 데 가서는 예전과 똑같이, 혹은 더 심하게 굴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감정이 상했거든. 그런 꼴을 나중에 보게 되면 그때도 내 기분이 계속 좋을까?

 

그거야 그 사람이 못나서, 덜떨어져서 그런 거고 나는 맞는 얘기를 했고 그렇게 얘기해줘도 못알아먹는 그 사람이 문제인 거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나는 항상 옳을 수 있을까? 어디 가서 논쟁이 붙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내가 틀린 것 같다. 그래서 기분이 상해서, 적당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를 바보, 덜떨어진 놈, 교양없는 놈, 이상한 놈, 나쁜 놈을 만든다. 그럼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마음을 고쳐먹고 싶을까?

 

토론은 그냥 승패를 가리려고, 내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이겨먹을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작게는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크게는 우리가 속한 집단,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려고 하는 건데, 논리로 백번천번 제압해봤자 감정 상해서 삐딱하게 나오면 의미없는 거잖아.

 

빠가 까를 만든다. 그리고 까가 빠를 만든다... 랑도 통하는 말인 것 같다.

아주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누구누구 지지자들이 하는 꼴이 맘에 안들어서 누구누구가 싫어졌어요... 이런 걸 무시하면 안 되는 거다.

 

그냥,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여기저기의 분위기를 보다 문득 이 영상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주장들이 충돌하고 있고, 내가 보기에 옳아 보이는 주장도 있고 좀 아닌데 싶은 주장도 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각 진영의 감정이 점점 상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싶다. 상호확증파괴

 

이 사건을 분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과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은 물론, 당연히,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참혹한 사건 앞에서 매우 감정적이 된 개개인의 거친 반응들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양쪽 모두, 지금 당장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도 이상한 글을 보면 화가 나고 답글을 달기 위해 키보드를 잡으면 피가 끓어오른다. 감정적 올바름을 시도해 보자는 위 TED 영상의 샐리 콘 씨 자신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아, 잘못은 저쪽이 먼저 했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내 말이 맞고 쟤 말이 틀린데 왜 내가 그래야 하냐고 물으면 역시 할 말 없다. 그냥... 어느 쪽이든 먼저 이성을 찾는 쪽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내 논리가 옳다고 상대방 속을 박박 긁고 키보드로 막 두들겨 패는 것까지 옳은 건 아니잖아.

 

p.s. 사회 전체적으로 스트레스가 꽉 차 있는 것 같다. 다들 뭐 하나만 걸려라 하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요새 팍팍하다는 얘기겠지. 뜬금없지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와 '저녁이 있는 삶'이 생각난다. 여유가 있어야 아량도 나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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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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